2014년 11월 7일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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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카카오톡 사태로 본 검열의 역사
박남일  ㅣ  2014년 11월 7일


(대한민보1910626일자 만평 검열 먹칠)

사이버 검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9월 16일,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 정도 발언은 못난 대통령의 유치한 불평쯤으로 치부할 만했다. 그러나 이틀 뒤에 득달같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발족한 검찰이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들먹이며 대대적인 사이버 검열을 예고했다. 게다가 검찰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민간 인터넷 업체까지 불러놓고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여는 등 네티즌들을 겁박했다. 그로써 국내 메신저 앱은 안전하지 않다는 대중적 불안감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각하의 톡’이 된 ‘카카오톡’

국내 대표적인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탈퇴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는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10월 1일. 다음카카오 이석우 공동대표는 검찰에 대한 “정당한 협조는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같은 날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통해,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대규모 압수수색 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마침내 대중적 분노와 비난의 화살은 검찰보다도 카카오톡을 향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카카오톡은 ‘각하의 톡’이라 비아냥거림에 시달리며 탈퇴자가 급증했다. 그러자 다음카카오 측은 대화내용 저장기간을 2-3일로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국정원에서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계속 감청해왔다는 주장이 더해졌다. 결국 다음카카오 측은 10월 8일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10월 16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참고인 진술에서 “실시간 감청을 위한 설비나 장비를 갖출 의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저장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압수수색 영장에는 응할 수밖에 없지만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검열하는 ‘감청영장’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 다음카카오 측 입장이었다.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급하는데 통상 이틀 이상 걸리는 점을 이용하여, 데이터 저장 주기를 단축한 것이었다. 또한 감청은 장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검열 논란을 피해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저장 주기가 3일로 줄어도 2일마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요청하면 실시간 감청이나 다를 바 없이 이용자의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지난 10월 2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감청영장을 거부하겠다는 다음카카오 측에 대하여 “업체가 협조하지 않으면 검찰이 직접 감청하겠다.”고 말하며 사이버 검열에 대한 굳은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의 역사

검열(檢閱)은 국가기관이 도서, 정기간행물, 공연, 미술품, 영화, 방송 등 각종 대중매체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강압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한 계급이 다수의 인민을 지배한 역사 속에서 검열은 일상화된 권력 기제로 작동해왔다. 그로써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저항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려온 것이다. 그러한 검열의 역사는 까마득한 고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진나라 시대에 시황제가 정치적 비판거리를 제공하는 유가 사상 서적을 몽땅 불태우고, 460여 명의 유생을 구덩이에 파묻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킨 바 있다. 1487년, 독일에서는 마인츠 지역의 대주교(大主敎)가 프랑크푸르트에 출판검열소를 설치하여 검열을 행했고, 이어 16세기 초에는 가톨릭교회와 각국 정부에서 종교개혁을 막기 위해 교회 관련 인쇄물을 검열했다.

한반도에서도 검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관심법’을 내세워 백성의 생각을 들여다보려 했다. 고려 충선왕 때부터는 아예 예문춘추관(藝文春秋觀)에 ‘검열’이라는 관직을 두어 문서를 검열케 했다. 한편 현대적 의미의 검열은 1907년 대한제국 법률 제1호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에 “신문지는 매회 발행에 앞서 내부 및 관할 관청에 각 2부를 납부해야 한다”는 법조항이 명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일제의 악명 높은 검열이 이어졌고, 조선의 신문은 종종 기사에 먹칠이 입혀진 채로 배포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검열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전시와 계엄 치하에서는 예외가 인정되었다. 더불어 이승만 정권은 1948년 12월에 ‘국가보안법’을 공포하고 일상적인 사상검열을 벌였다. 그 결과 색출(索出)된 30만 여 명을 ‘국민보도연맹’으로 조직하고, 한국전쟁 초기에 이들 대부분을 즉결처분 명목으로 학살했다. 박정희, 전두환 등 군부 정권도 수시로 검열과 검색, 그리고 검속을 자행했다. 또한 이들 정권은 정보기관, 공안기관을 통해 상시적인 도청, 감청 등의 검열을 해댔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아예 언론을 통폐합한 뒤 이른바 ‘땡전뉴스’를 내보내게 했다.

사적 권리를 중시하는 자본주의사회가 성숙함에 따라 국가권력에 의한 노골적인 검열은 다소 완화되었다. 한국에서도 1987년 개헌을 통해 원칙적으로 검열을 금지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검열과 검속을 벌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도연맹 사건과 같은 비극의 씨앗을 여전히 남겨두었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의 정착과 더불어 검열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즉 검열의 트렌드가 공권력에 의한 형사적 검열에서 자본에 의한 민사적 검열로 바뀌게 된다. 검열 또한 국가 관리 영역에서 민간 관리 영역으로 ‘민영화’된 것이다.

검열의 민영화, 새로운 검열의 주체로 떠오른 자본

요컨대 요즘 미디어는 대부분 광고에 의존하여 생존한다. 따라서 광고주로서 자본은 미디어를 실질적으로 검열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역학관계에 따라 궁극적으로 자본이 언론의 콘텐츠까지도 관리하게 된다. 한편 상당수의 기업들은 입사 지원자의 SNS나 개인홈페이지 주소를 이력서에 명시하도록 한다. 그 정보만 가지고도 기업은 지원자의 사적인 일상과 인간관계, 정치적 성향 등을 훤히 들춰볼 수 있다. 그것은 한 개인에 대한 총체적 검열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어떨까. 사람들은 인터넷이 검열을 거부해주기를 바란다. 실제로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카카오톡 사태에 분개하는 이유도 그러 믿음을 배반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인터넷은 그 자체가 이윤을 좇는 거대 자본으로 조직되어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모래알 같은 소비자일 뿐이다. 날로 성능이 개선되는 인터넷 검색엔진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선사하기 이전에 그 자체가 이미 검열의 주체로서 ‘빅브라더’이다.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의 광고 배너를 눈여겨보라. 그것은 우리에게 무척 친절하다. 새로 페이지를 열어도 이전에 한 번 클릭해본 상품의 배너광고가 졸졸 따라 다닌다. 포털을 열면 내가 사는 동네 영업점 광고가 줄줄이 나타난다. 내게 필요한 것들을 파는 가게들이다. 마치 네모난 광고 배너가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들이 친절한 이유는 우리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첨단 IT기술은 자본에 의한 더 많은 검열에 호응하고 있다. 그들은 '감시'가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우리를 감시의 ‘파놉티콘’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따라서 통신자본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건 모순이다. 그럼에도 그 감시자들은 우리의 얄팍한 욕망에 신속히 호응해주면서 마치 우리에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처럼 으스댄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검열의 자유’임에도.

이처럼 오늘날 우리는 전 방위적인 검열의 그물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감시와 검열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자기검열’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여타의 검열에 비해, 그것은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또 타의에 의한 검열은 검속이든 처벌이든 흔적을 남기지만, 자기검열은 작동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 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본과 지배 권력이 원하는 새로운 의식체계를 스스로 구축한다. 그 점에서 자기검열은 타의에 의한 폭력적 검열보다 더 치명적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깨뜨려야 할 것은 바로 자기검열의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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