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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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싱글세’ 뒤에 감추어진 지배세력의 속셈
박남일  ㅣ  2014년 12월 15일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인상이 줄줄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른바 ‘싱글세’가 논란이 되었다. 출처는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의 입이었다. 문제의 관료는 기자들과 함께 밥 먹는 자리에서 낮은 출산율을 우려하며 “싱글세라도 내게 해야 혼인도 하고 애를 낳을까?”라고 했고, 이 내용이 기사화 되면서 이른바 ‘싱글세’ 논란이 불거졌다. 즉각 “결혼 못한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세금까지 내야 하느냐, 오히려 국가가 우리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사생활 영역인 결혼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비록 농담일지언정 싱글세로 출산율을 높인다는 관료적 발상에서 비롯된 논란은 그에 반대하는 여론의 판정승으로 끝막음되었다.

싱글세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5년부터 이미 정부에서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세금을 걷어 저출산 대책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안이 종종 제기된 바 있었고, 그 때마다 대중적 반발에 부딪쳐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그럼에도 싱글세가 다시 언급된 것을 보면 지배 관료들의 속내가 수상쩍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방방곡곡 뒤덮던 게 불과 30년 전 아니던가.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탄식 이전에 양극단을 오가는 모순된 인구 정책이 의미하는 바를 한번쯤 톺아볼 일이다.

둘만 낳아 잘 키우자고 하더니

‘58년 개띠’라는 말이 상징하듯 1950년대 후반은 높은 출산율이 정점을 이루었다. 전쟁 후 여파로 베이비붐이 일어 연평균 인구 증가율이 3%대를 넘나들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서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단행했다. 이른바 ‘가족계획사업’이었다. 이 사업에는 대대적으로 행정력이 동원되었다. 전국에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되었고, 각 면(面)마다 가족계획 전담 요원이 배치되어 활동했다.

그 시절 반상회는 재래식 피임법과 피임기구를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자리였다. 또 커피 자판기에 앞서 공중화장실 구석에는 콘돔 자판기가 등장했다. 남성들은 예비군훈련장 한 구석에서 정관시술을 받기 위해 허리띠를 풀었고, 여성들은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각종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자궁 내에 특별한 장치를 했다. 그리고 피임에 실패한 여성들은 동네 병원에 가서 공공연하게 낙태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출산율이 가파르게 낮아져서 인구증가율이 1960년대에는 2%대에, 1970년대는 1%대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출산과 양육에서 표면적으로 해방된 여성들은 수출 상품을 생산하는 저임금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처럼 경제 발전과 더불어 박정희 정권의 출산 억제 정책은 이른바 ‘잘 사는 선진국’으로 가는 당연한 과정쯤으로 여겨졌다. 더불어 젊은이들에게는 자식 많이 낳는 건 부끄러운 일이며 빈곤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출산억제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할 만큼 ‘가족계획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혔다. 그런데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박정희 사후에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1980년대 중반에는 마침내 인구증가율이 0%대로 낮아졌다. 그나마 수명 연장에 의한 노령 인구를 제외하면 젊은 인구는 정체, 또는 감소의 길로 접어들었다. 무덤 속 박정희가 환호하며 벌떡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출산율 감소가 정부의 ‘가족계획사업’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이미 개발시대를 지나온 자본주의 사회의 여건이 아이를 많이 낳아 가르기 힘든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가족계획사업을 따로 벌이지 않았어도, 이미 정점을 찍은 한국 사회의 출산율은 결국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만 박정희 정권의 가족계획 사업은 저출산 문제를 앞당기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뿐.

경제는 주어이고 인구는 서술어가 된 자본주의 사회 

사실 박정희 정권의 가족계획사업은 비생산 과잉인구를 억제하려는 개발 자본주의 시대 경제사업의 한 수단이었다. 사업이 1962년부터 1981년까지 경제개발5개년계획 추진 시기에 맞추어 5년 단위로 이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인구정책은 자본가들에게 저임금 여성 노동력을 제공하고, 또 아동의 수를 억제함으로써 의무교육비 등의 사회보장비용을 절감했다. 게다가 이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랬듯이, 계급 착취로 인한 가난의 책임을 가난을 겪는 당사자에게 돌리는 이데올로기 전파에 성공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종말을 맞고 그 그림자가 걷히기도 전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급격히 낮아진 출산율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정부의 인구 정책도 출산 장려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둘만 낳아 잘 키우자며 극성스럽게 출산을 막던 정부는 어느새 돌변하여 출산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아이 좀 낳으라고 독려하게 되었고, 기어이 정부 관료가 ‘싱글세’까지 들먹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로써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은 ‘아이 많이 낳는 게 애국’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낮은 출산율이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어느새 상식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저출산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이대로 가면 젊은이 몇 명이 노인 몇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말이 덧붙는다는 점이다. 경제인구 감소로 고령화 시대 노인들에게 지급할 연금이나 사회보장 재원 마련에 차질이 생긴다는 뜻인데,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이 논리는 가난한 노인이 더 가난한 젊은 자식을 거두어 먹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이요 관념일 뿐이다.

젊은 인구는 납세 도구로, 노인 인구는 얻어먹는 존재로 간주하는 이 한 마디로 지배세력은 부실한 국민연금 등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 책임을 젊은이들에게 떠넘긴다. 동시에 부를 독점한 자본가계급과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슬쩍 은폐한다. 요컨대 평생토록 지주에게 노동을 수탈당한 뒤 병든 노인을 가난한 젊은이들더러 먹여 살리라는 이치이다. 곡식 가득한 지주의 곳간에는 자물쇠를 꼭 채워둔 채로.

그러므로 젊은이가 늙은이를 먹여 살린다는 논지는 유교적 효(孝) 관념을 이용한 교묘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이다. 결국 오늘날 지배세력의 출산율 타령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인구 탓으로 돌리려는 수작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제는 고출산을 탓하다가 이제는 저출산을 탓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자본가국가의 지배세력에게는 자신들의 돈벌이 체제로서의 경제가 주어이며, 사람은 그 뒤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술어일 뿐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려는 지배세력의 음모

한편 인구 증가나 인구 감소와 같은 사회적 현상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간의 번식 문제를 대하는 지배세력의 태도와 인간관이다. 사실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낸 인구(人口)라는 말 자체가 사람의 품격이나 존엄성이 아니라 사람의 ‘입’을 염두에 둔 경제적 개념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개체 수, 즉 ‘인구’를 경제의 한 요소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경제가 있는 게 아니라 경제를 위해 인간이 존재한다는 착각이 상식으로 통용된다. 그리고 경제를 위해서는 사람의 입 숫자를 조절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나아간다.

높은, 혹은 낮은 출산율이 문제라는 인식의 저변에는 인간의 개체수를 축사의 소나 돼지처럼 조절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를 위한, 자본가들의 정부의 이 끔찍한 경제적 욕망이야말로 낮은 출산율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번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의 ‘싱글세’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가 사회적 조건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 인구를 규정한다. 경제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저출산은 사회경제적 문제의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다. 낮은 출산율보다도 그것을 야기하는 사회의 본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아가 한 사회의 출산율은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의 여건과 의지에 따라 조절될 수 있을 뿐, 지배세력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 인구가 국가경쟁력이니 뭐니 하는 말은 미신에서 벗어나, 인류의 번식마저 억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속히 변혁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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