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5일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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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유럽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김광수  ㅣ  2012년6월15일


빚잔치가 시작되었다

스페인 은행들이 드디어 유럽은행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스 경제규모의 다섯배짜리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광동성 제조공장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중국은 드디어 금리인하에 돌입했다. 세계경제는 권투선수로 치면 상대방가격에 의해 피고름 뭍은 마우스피스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판국이다. 마우스피스의 비행은 워낙 스펙터클해서 유로존 12개국을 넘어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브라질 인도를 경유해 한국 증시에 착륙했다. 종합주가지수는 익숙한 숫자, 1800대로 돌아왔다.


스페인에서 인기 있는 투우경기의 대미는 투우에서 살해된 소를 가지고 바비큐파티를 하는 것이다. 이 때는 투우도박에 판돈을 잃은 사람도 낄 수 있으니 스페인은 단백질 복지사회다. 황소는 세계자본의 중심, 월스트리트의 상징이라는데 이 황소는 은행파산으로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경기장에서 정부부채라는 칼을 맞고 유로화로 불을 피운 그릴 위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인들이 단백질 복지를 누릴 차례다. 다만 모두가 판돈을 잃었으니 고기 맛이 좋을 리 없다.

자본주의에 미련을 갖는 정치

집안 어른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문지방 넘기가 무섭게 곡부터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역시 사탕도 씹어 먹는 한국사람답게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가 상복도 안 입은 채 곡을 해댔다. “자본주의는 끝났다” 가장 화끈하고 단정적인 말씀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구호마저 만지작거리며 미적거리는 한국의 비실비실한 소위 진보정당들을 대신해 전 부총리께서 국격을 세워주셨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인 유럽 식자들은 정치타령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구제 금융을 앞둔 그리스나 긴축에 반대한 후보가 승리한 프랑스가 단연 뉴스의 중심이었다. 그 논란의 핵심은 과연 정치가 유럽경제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역시 사민주의가 태동되었던 나라답게 “정치가 우선이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체제, 그 자체의 모순에 의한 것이지 정치가 체제위기의 원인이거나 해결난망의 주된 세력이 아니다. 그 만큼 작금의 경제위기가 크고 본질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항상 본질을 은폐하는데 선수이고 사태를 거꾸로 보이게 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문제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역시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공황시기에 국가는 역사적으로 경제위기국면에서 한 역할을 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정부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 나라가 빚을 내 은행 빚을 변제해 주었던 것이다. 토대(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에 상부구조인 국가가 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국가가 빚 때문에 넘어가고 있다. 누가 구원자로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정치는 경제에 의해 규정된다. 가끔 상부구조가 독립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이고 제한적이다. 특히 지금은 상부구조의 역할이 지극히 제한적이다. 토대의 위기가 비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모두가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있다.

지금 유럽에서는 독일만이 구원자처럼 보인다. 애초에 유로존이라는 것이 독일중앙은행의 금고에 각국경제가 모든 것을 위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독일의 경제력이 유로존이 기댈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독일마저 체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독일이 유일한 구원자로 보이고 모두가 독일을 쳐다보고 있는 상황은 불균형의 심화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이 불균형을 해소하는 길이 돈이 쌓여있는 나라가 돈 없는 나라에게 도움을 주는 “정치”의 역할을 기대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런 해법을 불가능하게 하는 각국의 국내“정치”에 한숨을 쉬고 있다. 즉 독일은 유권자들의 세금이 방탕한 나라를 위해 쓰이는 것을 막는 것이 정치의 목표가 되었고, 기꺼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긴축을 받아들여야 할 나라에서는 그런 인기 없는 정책으로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경제가 정치를 규정한다고 하는 것이다.

정치타령은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의 발로다.

역사적으로 구체제가 멸망했을 때 과거를 회상하며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봉건시대 절대왕정들이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과실만을 탐하지 않고,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던 고관직 자리를 부르주아에게 할애하고, 토지개혁의 대가로 귀족들에게 연금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면 절대왕정은 훨씬 오래갔을 거라는 가정은 비웃음을 산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행동양상은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유지하려고 하지 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에서 한쪽에 쏠려 있는 화폐자본을 없는 곳에 배분하고, 균형 상태를 회복하여 채무국의 성장을 도모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이자수입을 도모한다면 유럽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을 거란 가정도 쓸데없는 짓이다. 그저 주기적인 불황국면이라면 가능했던 일도 공황을 최근에 겪었거나 또 다시 공황이 올 거라는 공포 앞에서는 절대 안 일어난다. 지금 채권자의 합리적 결정은 빚 일부를 탕감 해주고, 나머지 채권을 조기 회수하여 불안 요소를 단기 내에 해소하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채무국에게 채권을 늘려주고 장기적인 이자수입을 도모하려는 자는 비합리주의자요 반이성적인 인간이다.

이런 것이 역사의 간지다. 체제가 무너질 때는 단기적 전망이 언제나 장기적 전망을 누르게 되어있다. 자본주의가 보다 합리적이고, 장기전망을 갖는 정치세력들의 합의를 통해 더 지속가능할 거라는 가정은 그래서 낭만적이고 비극적이다.

왜 이번 위기에는 위대한 정치인이 부상되지 못하는가?

유럽사람들의 한탄처럼 위기는 정치세력들에 의해, 그리고 대중정치에 의해 계속해서 증폭되고, 해결 난망한 것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왜 루주벨트나 혹은 히틀러처럼 이런 위기를 해결하는 영웅은 나타나지 않을까? 강만수씨는 대공황 때는 아직 제조업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말을 점잖게 해서 그렇지 까놓고 말하면 대공황이후에 2차대전이 있었기에 제조업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루주벨트나 히틀러 모두 두 진영의 전쟁을 이끈 지도자들이다. 수천만명의 희생위에 자본주의는 기초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핵무기 시대에 경제를 살리겠노라고 핵가방을 열 얼간이는 없기 때문이다. 국지전을 몇 개 터트려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작년 리비아 내전 간섭이 유럽경제성장에 단 1%라도 영향을 주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단 한명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세계는 참 한심한 지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인류절멸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참고 지낼 것인가? 이것이 자본주의 정치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전부다. 자본주의 토대위에 세워진 어떤 정치체제, 시스템도 이 체제를 구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체제의 한계다. 자본주의를 갈아엎을 자본의 정치는 있을 수 없기에...

왜 유럽정치에서 극단주의자들이 부상하는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는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의 전망을 크게도 하고, 역으로 가장 반동적인 정치세력에 의한 도박도 허용한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는 공황이 노동자나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자본가와 부르주아 정치인에게도 이 체제가 끝장났다는 신호로 보였고, 일부는 혁명을 꿈꾸었고, 일부는 파시즘을 불러냈다. 최근 유럽선거에서 극단주의자들(급진좌파, 혹은 극우파)이 약진한 결과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희망을 대부분 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주의 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번영, 혹은 지속을 전제로 존속하는 사민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의 종언도 임박했다. 이제 그들의 정치는 소멸될 운명에 처해있다. 광장의 정치, 대중토론의 정치에서 발전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그 뒤를 잇게 될 것이다. 동시대인으로서 얼마나 행복한가? 인류역사의 가장 큰 변화를 목격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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