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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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호 이후[63호] 노동절에 당당한 노동자로 자본주의와 투쟁하자
  : 해방  hbyd@jinbo.net : 2011-05-11 :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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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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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노동자의 날, 인류가 존엄을 찾는 날 - 메이데이

  “1979년 메이데이에 이란 노동자들은 바로 몇 달 전의 팔레비 타도를 기념하는 시위행진을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억압받는 소수 민족의 언어로 쓰여 진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그들은 “(어용 노조가 아닌) 진정한 노조 만세!”, “남녀 동일임금!”을 외쳤다.”
  메이데이는 차별이 있는 곳에 평등을 꿈꾸는 자들의 몫이다, 차별받고 다수와 소수로, 주류와 비주류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별당하고 분열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이기에 그들은 평등이 그리고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삶의 가치인지를 알게 된다. 인종과 민족, 그리고 성의 구별도 메이데이 행진에서 자본의 착취로 고난이 새겨진 노동자의 두 손이 부여잡고 있는 깃발아래 하나가 된다. 그것은 노동자가 세상의 모든 것이며, 세상의 모든 것이 노동자를 통해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5월1일을 메이데이라 부를 때 그것은 메이데이행진을 통해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의 선두에 있었던 미국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성찬이다. 1886년 미국에서 거행된 메이데이 행진은 그 동안 차별과 분열로 찢겨 있던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연대, 여성과 남성노동자들의 연대의 날로 기록되고 있다. 그날이후 인류역사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메이데이와 함께 했다. 부다페스트 유대인 게토지역에서 1943년 5월1일 나치와 무장투쟁을 시작한 유태인 사회주의자들의 숨죽인 인터내셔널 합창이 울린 날도 메이데이였다. 1945년 5월1일,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파시스트정권에 총공세를 퍼부어 이탈리아를 해방시킨 날도 메이데이였다. 메이데이는 노동자계급이 등장한 이래 그들의 행동이 세계사의 모든 것이며, 모든 인류 해방의 역사가 노동자계급의 행동에 빚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은 어디에 있는가


  메이데이를 며칠 앞두고 실리주의 집행부라 칭해지는 현대자동차 이경훈 집행부가 내놓은 장기근속자 채용자녀 가산점 요구안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가지고 언론에서는 특혜니, 세습이니 하며 매도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노동자들이 자본에 제기하는 요구는 무조건 정당하다는 식으로 옹호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불파투쟁을 지금껏 해오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전선을 흐리는 행위일뿐더러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과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이뤄진 정규직 노조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 공장제도가 만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위계, 형님, 동생의 관계를 고집하는 것이다. 한 공장 지붕아래서 노동하는 동지들간에 이럴 수는 없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동안 자식들이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면서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정규직 철폐문제가 조금씩 자기문제로 이해되고 연대의식이 싹트던 흐름을 이번 요구안이 꺾어버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요구안 파문은 비정규직 철폐투쟁과 관련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간에 대중적인 연대와 단결의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 일반, 즉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진지하게 접근하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그것이 비록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요구가 조합주의에 머물고, 직업별 이해에 갇히면 보편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보편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당면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놓치지 않는 깨여있는 의식이 요구된다. 실업, 비정규직, 빈곤의 문제가 심화되는 남한사회문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원칙은 평등과 연대이고 자본주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죽어가는 노동운동을 되살리자


  비정규직으로 공장에 들어온 자식이 불파투쟁을 한다고 하자 배낭에 농성용품을 싸주면서 정규직 되기 전에는 집에 올 생각 말라고 등 떠밀던 아빠는 사측의 협박에 고개를 숙인 채 자식손목을 잡고 농성장을 빠져나갔고 이제는 혹시 하는 마음에 조합요구안에 희망을 품고 있다. 대를 이어 감내해야 하는 이 모욕의 굴레를 빠져나오기 위한 방도가 알량한 자본의 시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 자본가와 노동자의 역할구별을 재생산하기 위해 이를 질서라는 이름으로 혹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메이데이의 역사는 불의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 차별에 저항하는 것, 그리고 잘못된 체제를 무너트리기 위해 사선을 넘어 돌격하는 것만이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비정규직의 존재가 자본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질서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없앨 수 없다. 노동운동이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 정규와 비정규의 위계와 질서를 직접 공격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쟁을 강요당하고 자본이 그어 놓은 위계에 구겨 넣어져야 하는 청년들의 불만과 욕구가 있다. 노동운동은 경쟁의 질서, 위계의 질서에 저항하는 운동을 주도함으로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아니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로 고통받는 모든 민중에게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노동운동이 희망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철폐와 실업 없는 세상이라는 보편적 요구를 실천하는 역사적 노동자가 된다. 조합주의의 편협한 틀을 깨고 만인을 해방시키는 역사적 인간이 되자.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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